불이 꺼지지 않는 창고

FIRE SAFETY REVIEW
불이 꺼지지 않는 창고
인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 강화된 법은 왜 그 건물을 비켜 갔는가

가장 강하게 고쳐진 소방 기준은, 지금 불타고 있는 그 건물에는 단 한 줄도 적용되지 않았다.
1.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2026년 7월 18일 오전 6시 54분, 인천 서구의 쿠팡 제32물류센터 6층에서 시작된 불은 사흘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았다.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됐고, 인력 700명과 장비 200대가 넘게 투입됐으며,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에 인근 주민에게 대피 명령까지 내려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이 사고와 가장 직결된 전문가 집단이 조용하다는 것이다.
건축사는 건축법을 다루는 사람이다. 내화구조를 결정하고, 방화구획을 그리고, 마감재료의 난연 성능을 도면에 명기하는 것이 건축사의 과업이다. 화재안전 제도와 가장 가까운 직능이 건축사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그런데 업역과 권익이 걸린 사안에는 그토록 큰 목소리를 내는 우리가, 연면적 30만 제곱미터짜리 건물이 사흘째 타들어 가는 지금, 내화기준과 방화구획 제도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숨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무관심은 이율배반적이다.
설계의 언어로 지어진 건물이 설계의 전제를 넘어 불타고 있다면, 그 전제를 따져 묻는 것은 설계자의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내화기준·방화구획·소방설비 제도를 한번 처음부터 검토해 보는 차원에서 이 글을 쓴다. 결론을 먼저 말해 두겠다. 이번 화재는 법이 없어서 난 불이 아니다.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난 불이다.

2. 다섯 해 만에 되풀이된 55시간
사실관계부터 정리하자. 불이 난 인천 제32물류센터는 지상 8층, 연면적 약 29만 9천 제곱미터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발화층인 6층 한 개 층의 바닥면적만 2만 8천 제곱미터, 축구장 네 개 규모다. 불은 6층에서 시작해 외벽을 타고 7층으로 번졌고, 내부 3단 랙에 적재된 생활용품이 연쇄적으로 타면서 소방대의 내부 진입을 막았다. 근무자 121명은 무사히 대피했지만, 진화는 55시간을 넘겨서도 끝나지 않았다.
소방당국을 가장 긴장시킨 것은 불이 아니라 그 아래층이었다. 5층에는 리튬배터리로 구동되는 물류로봇 수백 대가 있었다. 배터리 총량은 전기차 20대 분량. 불이 5층까지 내려앉는 순간 건물 전체의 급속 연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소방의 판단이었고, 진화 전략 자체가 '5층 사수'로 짜였다. 창고의 화재하중이 종이상자와 비닐의 시대를 지나 배터리의 시대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에 실전으로 확인했다.

이런 장면이 처음인가. 아니다. 다음 표를 보자.
■ 표 1. 최근 대형 물류시설 화재 연혁

통계는 더 냉정하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국내 창고 화재로 287명이 목숨을 잃었고 재산피해는 8,745억 원에 달했다. 그 사이 전자상거래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물류센터는 단층 보관창고에서 8층짜리 수직 도시로 진화했다. 층마다 메자닌을 끼워 넣고, 랙을 천장까지 올리고, 로봇이 상품을 나른다. 건물은 첨단이 됐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화재의 양상도 첨단이 됐다는 것이다. 우리의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갔는가. 이것이 이 글의 질문이다.

3. 왜 이렇게 됐는가 — 다섯 개의 구멍

구멍 하나. 법은 앞으로만 흐른다 — 비소급의 함정
덕평 화재 이후 제도는 실제로 강화됐다. 이것은 인정해야 한다. 2023년 10월 소방청은 창고시설 전용 화재안전기준(NFPC/NFTC 609)을 제정해 2024년 1월부터 시행했다. 일반 헤드보다 방수량이 두 배인 라지드롭형 스프링클러가 의무화됐고(분당 80리터에서 160리터로), 방수 지속시간은 20분에서 60분으로 늘었으며, 랙식 창고는 랙 높이 3미터 이하마다 헤드를 추가로 달아야 한다. 2022년 12월에는 연면적 10만 제곱미터 이상 창고가 성능위주설계 대상에 포함됐다.
그런데 인천 제32물류센터는 2020년에 건축허가를 받았다. 강화된 기준은 단 한 조항도 이 건물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 건물의 스프링클러는 분당 80리터, 20분 기준으로 설계된 설비다. 법이 강해질수록 역설이 커진다. 신축 창고의 안전은 올라가는데, 시장에 이미 서 있는 수천 동의 기존 창고는 어제의 기준에 묶인 채 오늘의 화재하중을 받아내고 있다. 위험은 재고처럼 쌓이는데, 제도는 신상품만 관리한다.
■ 표 2. 덕평 화재 이후 강화된 제도와 그 사각지대


구멍 둘. 스프링클러는 작동했다, 그리고 끄지 못했다
이번 화재에서 소방당국은 스프링클러와 방화셔터가 작동했다고 발표했다. 덕평 때처럼 사람이 설비를 꺼 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은 잡히지 않았다. 왜인가. 6층 내부는 복층 메자닌 구조에 3단 랙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천장에서 쏟아진 소화수는 최상단 적재물 상자에 막혀 아래로 내려가지 못한다. 불은 적재물 더미 깊숙한 곳에서 타는 심부화재로 전환되고, 물이 닿지 않는 곳에서 며칠이고 살아남는다.
이것을 '설비 고장'이라 부르면 진단이 틀린다. 설비는 설계된 대로 일했다. 문제는 설계의 전제다. 스프링클러는 설계화재, 즉 상정된 화재 크기를 전제로 헤드 간격과 방수량이 정해진다. 그 전제를 넘어서는 화재하중이 들어오는 순간 설비는 무력해진다. 나는 이것을 '설계화재 초과 상태'라 부르겠다. 오늘날 이커머스 창고의 적재 밀도는 설계 당시의 상정을 일상적으로 초과한다. 작동했는데 소화하지 못했다면, 고장 난 것은 헤드가 아니라 기준이다.

구멍 셋. 1,000도 앞에 선 방화구획
방화구획은 화재를 한 구획 안에 가두는 건축의 최후 방어선이다. 그런데 이번 불은 6층에서 7층으로 외벽을 타고 번졌다. 구획의 벽과 바닥이 버텨도, 화염은 개구부와 외피를 우회한다. 1,000도를 넘는 초고온에서는 방화셔터 자체가 화염 관통을 허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물류센터는 컨베이어와 자동화설비가 층과 구획을 관통하는 건물이다. 설비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구획에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은 완화 특례라는 이름으로 합법화되어 왔다. 2022년 4월 개정으로 단순 보관시설은 완화대상에서 빠졌지만, 그 전에 완화받아 지어진 건물들은 오늘도 그 구획 그대로 영업 중이다.

구멍 넷. 배터리는 창고의 화재 문법을 바꿨다
5층의 리튬배터리 로봇 수백 대는 이번 화재의 진짜 경고장이다. 리튬배터리 화재는 열폭주로 자체 산소를 만들며 타기 때문에 물 계통 소화설비의 효과가 제한적이다. 그런데 현행 창고 기준 어디에도 '로봇 충전구역'이라는 개념이 없다. 배터리 수백 개가 한 층에 모여 충전되는 공간이, 제도상으로는 일반 보관구역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자동화 창고의 화재 문법이 바뀌었는데 기준의 문법은 그대로다. 2021년 영국 오카도(Ocado) 자동화 창고 화재가 로봇 충돌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은, 이것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화 물류 전체의 신종 리스크임을 보여준다.

구멍 다섯. 안전은 준공일에 동결된다
다섯 구멍의 뿌리는 하나로 모인다. 우리의 화재안전은 인허가와 준공 시점의 조건으로 고정된다는 것이다. 준공 이후 랙이 증설되고, 메자닌이 끼워지고, 취급 품목이 바뀌고, 배터리 로봇이 들어와도, 소방설비와 방화구획을 다시 검증하는 절차는 사실상 없다. 건물은 매일 바뀌는데 안전은 준공일에 멈춰 있다. 나는 이것을 '준공 동결형 안전관리'라 부르겠다. 이 동결을 녹이지 않는 한, 다음 화재의 장소와 날짜만 모를 뿐 발생 자체는 예정되어 있다.

4. 어떻게 바꿀 것인가
국토교통부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물류시설 화재안전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는 민관 TF를 출범시켰다. 방향을 잡아야 할 때다. 검토해야 할 대안을 네 개의 축으로 정리한다.
제도 — 소급의 용기
첫째, 기존 시설 소급 로드맵이다. 모든 기준의 일괄 소급은 불가능하다. 수조와 펌프, 배관을 전면 교체해야 하고 구조 보강이 안 되는 건물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병원과 고층건물에 스프링클러 소급 설치를 관철해 온 것처럼, 위험도 등급을 매겨 단계적으로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연면적·층수·적재 특성으로 기존 창고를 등급화하고, 상위 위험군부터 유예기간을 두어 보강을 의무화하되, 세제·보험요율 인센티브로 견인해야 한다. 둘째, 화재하중 변경 신고제다. 랙 증설, 메자닌 설치, 배터리 설비 도입처럼 화재하중을 바꾸는 운영 변경은 소방 재검토를 거치게 해야 한다. 셋째, 리튬배터리 충전구역의 전용 기준이다. 독립 방화구획, 전용 감지·소화설비, 이격거리를 명문화해야 한다. 넷째, 성능위주설계의 주기적 재검증이다. 준공 후 5년마다 실제 운영 조건으로 피난·소화 성능을 다시 계산하게 하면, '준공 동결'은 구조적으로 풀린다.

기술 — 물을 넘어서
천장 살수가 랙 심부에 닿지 못한다면 답은 두 방향이다. 물을 더 가까이 가져가거나, 산소를 빼앗거나. 전자가 인랙(In-rack) 스프링클러와 ESFR 헤드의 확대라면, 후자는 무인 자동화 구역의 산소저감시스템과 이산화탄소 질식소화다.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자동창고라면 산소농도를 발화점 이하로 상시 관리하는 방식이 물보다 근본적이다. 감지 쪽에서는 공기흡입형 감지기(ASD)와 열화상 상시 모니터링으로 발화 전 단계의 열 축적을 잡아내야 한다. 진압 쪽은 냉정하게 보자. 현대로템이 개발한 무인소방로봇은 올해 소방청에 4대가 기증됐고 3년 내 50대 도입이 목표다. 그러나 현재의 로봇은 원격 방수 수준으로, 이번 규모의 심부화재에는 어림도 없다. 로봇은 소방관의 생명을 지키는 보조 수단으로 즉시 확대하되, 그것이 건물 설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꺼지지 않는 불의 해법은 진압 기술이 아니라 확산 차단 설계에 있다.

운영 — 소방대가 알아야 싸운다
덕평의 교훈은 설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반복 경보를 오작동으로 오인해 설비를 정지시킨 것이 초기 진화 실패의 원인이었다. 관계인의 초기대응 훈련과 경보 신뢰성 관리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나아가 물류시설법이 의무화한 보관 물품 정보 게시를 종이 게시판 수준에서 끝낼 일이 아니다. 어느 층 어느 구역에 무엇이 얼마나 적재되어 있는지, 배터리는 어디에 몇 대가 충전 중인지를 소방대가 출동 중에 조회할 수 있어야 한다. 진입할 수 없는 건물에서 소방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정보다.
디지털 — 종이 점검표에서 AI 관제로
마지막 축은 이 모든 것을 묶는 디지털 전환이다. 지금 물류센터의 소방점검은 여전히 점검자가 종이 체크리스트를 들고 8층을 걸어 오르는 방식이다. 스프링클러 밸브가 잠겼는지, 수신기 경보가 진짜인지, 사람의 눈과 판단에 맡겨져 있다. 이것을 뒤집어야 한다. 밸브 개폐와 펌프 상태는 IoT 센서가 상시 감시하고, 경보의 진위는 AI가 다중 센서 교차검증으로 판별하며, 점검 기록은 모바일에서 사진과 위치정보로 남기고, 재고·배터리 배치 데이터는 디지털 트윈 위에서 소방 관제와 연동된다. 덕평의 '경보 오인'과 인천의 '진입 불가'는 모두 정보의 실패였다. 종이 위의 체크 마크가 스마트폰 위의 AI 분석으로 바뀌면, 실패의 두 조건이 함께 사라진다.
■ 표 3. 물류시설 화재안전 관리의 디지털 전환


5. 지금 당장 시작할 것
언제 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다. 지금이다. 불이 꺼지고 감식이 끝나면 여론도 함께 식는다. 덕평 이후 우리가 얻은 것이 '신축 기준 강화'에서 멈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표 4. 단계별 추진 로드맵


6. 바꾸면 이만큼 달라진다
이 로드맵이 작동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첫째, 기존 창고 수천 동이 '어제의 기준'에서 벗어난다. 신축과 기존의 안전 격차, 즉 비소급의 함정이 단계적으로 메워진다. 둘째, 운영 변화가 제도에 포착된다. 랙 하나를 올려도 배터리 한 대를 들여도 안전 검증이 따라붙는 순간, 준공 동결형 안전관리는 끝난다. 셋째, 소방 전술이 바뀐다. 어디에 무엇이 타고 있는지 아는 소방대와 모르는 소방대의 차이를, 우리는 이번에 55시간으로 확인했다. 넷째, 산업이 산다. 화재 한 건의 직접 피해가 수천억 원이고, 물류 중단과 판매자 재고 소실까지 더하면 피해는 배가된다. 안전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물류 산업의 존속 조건이다. 감정인의 눈으로 덧붙이면, 사고 이후의 분쟁 비용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 책임 소재를 다투는 소송은 수년을 끌고, 그 비용은 결국 보강 비용을 웃돈다.
7.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
이 글은 쿠팡 한 회사를 겨냥하지 않는다. 개별 기업의 과실은 감식과 수사가 밝힐 일이다. 이 글이 겨냥하는 것은 구조다. 법은 강화됐으나 앞으로만 흐르고, 설비는 작동했으나 전제를 초과했으며, 건물은 매일 바뀌는데 안전은 준공일에 멈춰 있는 구조. 그 구조를 고치는 것은 소방관의 호스가 아니라 제도와 설계의 펜이다.
그리고 그 펜을 쥔 사람이 누구인가를 다시 묻고 싶다. 내화구조와 방화구획은 건축사의 언어다. 우리가 권익을 말할 자격은, 이런 순간에 제도를 말하는 책임에서 나온다. 다음 화재 앞에서도 침묵한다면, 그때는 무관심이 아니라 직무유기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불은 소방이 끄지만, 불이 나지 않는 건물과 번지지 않는 건물은 우리가 그린다.
참고자료
1. 연합뉴스·파이낸셜뉴스, "반복되는 물류센터 화재… 강화된 기준에도 기존시설은 사각지대" (2026. 7. 20.)
2. 코리아헤럴드, "Evacuations ordered as Coupang warehouse blaze fuels collapse fears" 외 화재 경과 보도 (2026. 7. 18.~20.)
3. 문화일보, "'전기차 20대 분량 배터리 뇌관'… 쿠팡 화재 55시간째, '5층 사수' 사활" (2026. 7. 20.)
4. 소방청, 「창고시설의 화재안전성능기준(NFPC 609)」 (소방청고시 제2023-39호, 2024. 1. 1. 시행)
5.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9조 (성능위주설계 대상, 2022. 12. 개정)
6. 「건축법 시행령」 제46조 및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2022. 4. 29. 개정)
7. 국토교통부, 물류시설 화재안전관리 개선 민관 TF 출범 보도 (아시아투데이, 2026. 7. 20.)
8. IFSEC Insider, "Ocado blaze: Automated warehouses create new fire protection complexities" (2021)
9. 현대로템, "첨단 무인 소방로봇 최초 공개" 보도자료 (2026)
10. 머니투데이, "무인헬기 띄우고 로봇개 달리는데… 영웅들에게만 기댄 한국 소방" (202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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