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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대로 시공했는데 하자라니

EXPERT BLOG · CONSTRUCTION DISPUTE


설계대로 시공했는데 하자라니



설계기준과 성능기대의 간극, 책임의 경계


건축사 · 시공사 · 건설분쟁 감정인 · 발주자를 위한 전문 블로그 | 2026. 09.


도면을 지켰다는 것은 면책 사유가 아니라 출발선이다.

감정 현장에서 시공사 담당자가 도면 한 장을 펼쳐 놓고 말한다. 여기 보십시오, 이 부위는 도면 그대로 시공했습니다. 자재도 시방서 그대로입니다. 검측도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결로가 생겼다. 곰팡이가 피었다. 입주민은 하자라고 하고, 시공사는 억울하다고 한다. 도면대로 지었는데 어떻게 하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한 가지를 인정해야 한다. 도면은 건물이 아니다. 도면은 건물을 만들기 위한 지시서이고, 계약이 산 것은 지시서가 아니라 건물이다. 그 건물이 통상 갖추어야 할 성능을 갖추지 못했다면, 지시서를 얼마나 충실히 따랐는지는 책임의 크기를 정할 뿐 하자의 존재 자체를 지우지 못한다. 2026년 4월 서울행정법원이 GS건설의 하자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하면서 쓴 문장이 이 구조를 정확히 요약한다. 시공사는 전문가로서 하자 없는 일을 완성할 능력과 의무가 있고, 법령에 위반된 설계도면을 받았다면 그 적합성을 스스로 검토하고 도급인에게 의견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그 문장이 어디서 왔고, 어디까지 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설계기준을 지킨 시공이 왜 성능 미달과 공존할 수 있는가. 설계 책임과 시공 책임은 어디서 갈라지는가. 시공사가 도면의 오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리고 입주민이 기대한 성능은 계약의 내용인가, 아니면 희망사항에 불과한가. 마지막으로 감정인은 이 다툼을 어떤 순서로 풀어야 하는가.



1. 적법 시공과 성능 미달의 공존

두 개의 기준선이 있다. 이것이 모든 혼란의 출발점이다.


하나는 설계기준이다. 법령과 고시가 정한 최소 요건, 그리고 설계도서가 그 요건을 반영해 그려 놓은 두께와 재료와 치수다. 단열재 몇 밀리미터, 바닥 완충재 몇 밀리미터, 방수층 몇 겹. 이 기준선은 도면 위에 선으로 그어져 있고, 검측으로 확인되고, 준공 서류로 남는다. 다른 하나는 성능기대다. 겨울에 창틀에 곰팡이가 피지 않는 것, 위층 아이가 뛰어도 견딜 만한 것, 비가 와도 천장이 젖지 않는 것. 이 기준선은 어디에도 선으로 그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집을 살 때 이것을 산다.


문제는 두 기준선이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설계기준은 시험실의 조건에서, 표준적인 시공을 전제로, 최소한의 요건으로 정해진다. 성능기대는 실제 세대에서, 실제 시공 품질로, 실제 기후와 생활 조건에서 형성된다. 그 사이에 폭이 있다. 나는 이 폭을 성능 공백(performance gap)이라 부른다. 설계기준을 100% 지켜도 성능 공백이 남는 이유는, 설계기준이 애초에 성능을 보증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닥충격음이 가장 선명한 예다. 2022년 8월 사후확인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공동주택 바닥은 사전인정제로 운영됐다. 시험동에서 성능등급을 받은 차단구조를 현장에 적용하면 그 단지는 그 등급을 가진 것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2019년 감사원 감사에서 준공 시점 현장 측정 결과 평균 2개 등급이 하락했고, 측정 세대의 60%가 법정 최소기준에 미달했다. 2022년 국토교통부 용역 결과에서도 36%가 미달했다. 도면과 시방을 그대로 따른 단지들이다. 적법 시공과 성능 미달이 같은 세대 안에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 표1. 설계기준과 성능기대가 어긋나는 대표 부위

결로 감정의 한 장면을 그려보자. 1월 새벽, 감정인이 세대에 들어간다. 침실 외벽 모서리에 검은 곰팡이가 손바닥만큼 번져 있다. 열화상 카메라를 대면 그 모서리만 파랗다. 표면온도 9도, 실내 22도, 실외 영하 8도. 도면을 펼친다. 단열재 두께는 기준 그대로다. 시방서의 자재도 그대로다. 그런데 모서리에서 단열재 두 장이 만나는 자리에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이 있고, 그 틈으로 외기가 들어와 콘크리트를 식힌다. 도면에는 그 틈을 어떻게 메우라는 표기가 없다. 도면대로 시공한 것이 맞다. 그리고 결로가 생긴 것도 맞다. 두 문장은 모순이 아니다.


표의 마지막 행이 2026년 GS건설 사건이다. 20개 동 178세대 연립주택에서 일부 동의 주출입구에 경사로가 없었다. 시공사는 설계상 하자이고 자신은 도면대로 시공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면대로 시공한 것은 사실이나, 그 도면이 법령에 위반됐다면 전문가인 시공사가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도면 준수는 하자 판단의 종착점이 아니라 책임 배분의 출발점이다.


법원이 하자를 정의하는 방식을 보면 이 결론이 왜 나오는지 이해된다. 대법원은 건축물의 하자를 공사계약에서 정한 내용과 다른 구조적·기능적 결함이 있거나, 거래관념상 통상 갖추어야 할 품질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아니한 것으로 정의해 왔다. 두 갈래다. 앞의 것은 계약 기준, 뒤의 것은 통상 품질 기준이다. 도면대로 시공했다는 항변은 앞의 갈래에서만 힘을 쓴다. 뒤의 갈래, 즉 통상 갖추어야 할 품질에는 도면이 답하지 못한다. 도면이 무엇을 그렸든, 거주자가 통상 기대하는 성능에 미달하면 그것은 하자다.



하자의 유무는 성능이 정한다. 도면은 책임의 크기를 정할 뿐이다.



2. 설계 책임과 시공 책임의 분기점


하자가 있다고 판단되면 다음 질문이 온다. 누구의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첫 번째 도구가 민법 제669조다. 도급 목적물의 하자가 도급인이 제공한 재료의 성질 또는 도급인의 지시에 기인한 때에는 수급인이 담보책임을 지지 않는다. 다만 수급인이 그 재료 또는 지시의 부적당함을 알고 도급인에게 고지하지 않은 때에는 그러하지 않다. 대법원은 1996년 이 조항을 설계도면에 적용했다. 건축 도급의 수급인이 설계도면대로 시공한 경우 이는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같아서, 설계도면이 부적당함을 알고 고지하지 않은 것이 아닌 한 하자담보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시공사는 안심할 수 있다. 도면은 발주자의 지시다. 지시대로 했으니 책임은 지시한 사람에게 간다. 미국의 스피어린 법리(Spearin doctrine)도 같은 방향이다. 1918년 연방대법원은 발주자가 도면과 시방서를 제공하면 그것이 의도한 결과를 낼 것이라는 묵시적 보증이 따라온다고 보았고, 그 도면의 결함만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시공사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의 제669조와 미국의 스피어린은 같은 원리를 다른 언어로 말한다. 지시한 자가 지시의 위험을 진다.


그러나 이 원리에는 세 개의 문이 달려 있고, 실무에서 시공사는 대개 그 문 중 하나에서 걸린다.


첫 번째 문은 그 하자가 정말 도면에 기인했는가다. 도면대로 시공했다는 말은 도면에 그려진 것을 그린 대로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자의 상당수는 도면이 그리지 않은 자리에서 생긴다. 이질재 접합부의 실링 순서, 관통부 주변의 방수 보강, 창호 하부의 물끊기, 단열재와 열교 차단재가 만나는 모서리. 도면은 여기서 침묵한다. 침묵한 자리를 시공사가 자기 방식으로 채웠다면, 그 채움은 도급인의 지시가 아니다. 시공사의 판단이다. 그리고 그 판단의 결과는 시공사에게 귀속된다.


두 번째 문은 시공 품질이 도면의 전제를 만족했는가다. 도면은 특정 시공 품질을 전제로 그려진다. 바닥충격음 차단구조는 완충재 위에 기포콘크리트가 균일하게 타설되고, 마감 몰탈의 물결합재비가 정해진 범위 안에 있을 것을 전제한다. 2023년 중랑구 재건축조합 사건에서 1심 법원은 완충재의 불량, 청소되지 않은 바닥의 자갈과 모래, 틈에 끼워 넣다 돌출된 자재를 시공 하자로 지적하고 시공사에게 보수비의 70%를 배상하도록 했다. 시공사는 인정된 차단구조를 도면대로 적용했다고 항변했으나, 도면이 전제한 시공 품질이 현장에 없었다.


세 번째 문이 고지의무다. 이것은 다음 장에서 따로 다룬다.



■ 표2. 하자 원인의 3분류와 귀속 판단의 관문

이 표에서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칸은 세 번째 행이다. 설계자는 상세는 시공사가 작성하는 것이라 하고, 시공사는 상세를 그려주지 않은 설계 미비라 한다. 양쪽 다 절반은 맞다. 그래서 감정인은 이 행을 만나면 도면이 아니라 절차를 본다. 그 상세가 결정될 때 설계자가 확인했는가, 감리자가 승인했는가, 시공사가 질의했는가. 기록이 있으면 귀속이 정해지고, 없으면 대개 혼재로 남는다. 혼재로 남은 하자는 대법원이 2015년 결로 사건에서 정리한 대로 설계·감리·시공의 각 손해배상채무가 중첩되는 범위에서 부진정연대채무로 처리된다. 셋이 함께 물어내고, 나중에 서로 구상한다.


한 가지를 짚어 두자. 설계도서 사이에도 서열이 있다. 「건축물의 설계도서 작성기준」은 도서 간 내용이 다를 때 공사시방서, 설계도면, 전문시방서, 표준시방서, 산출내역서, 승인된 상세시공도면, 관계법령의 유권해석, 감리자의 지시사항 순으로 적용한다고 정한다. 시공사가 "도면대로"라고 말할 때 감정인이 먼저 확인하는 것은 그 도면이 이 서열에서 어느 자리에 있는가다. 시방서가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면, 도면대로 시공은 곧 시방서 위반이다.

도면대로 했다는 말은, 도면이 무엇을 전제했는지까지 지켰을 때만 완성된다.



3. 설계도서의 오류를 시공사가 알았다면


민법 제669조 단서는 짧다. 부적당함을 알고 고지하지 않은 때. 그러나 이 열두 글자가 설계·시공 책임 분쟁의 승부처다.


문언만 보면 기준은 실제 인식이다. 알았는가. 그런데 판례와 실무는 이 기준을 조금씩 넓혀 왔다. 시공사는 건축 전문가다. 전문가는 일반인이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법원은 시공사가 실제로 알았는지가 아니라, 전문가로서 알 수 있었는지, 검토했어야 했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2026년 GS건설 사건의 문장이 정확히 그것이다. 법령에 위반된 설계도면을 제공받았다면 그 적합성을 스스로 검토하고 도급인에게 적절한 의견을 제시했어야 한다. 알았는가에서 검토했어야 했는가로, 기준이 한 칸 이동했다.


나는 이 이동을 고지의 문턱(threshold of disclosure)이 낮아졌다고 표현한다. 과거의 문턱은 명백한 오류였다. 구조계산이 틀렸다거나 치수가 맞지 않는 수준의 오류를 알고도 지었을 때만 시공사가 걸렸다. 지금의 문턱은 전문가의 주의로 발견 가능한 오류다. 법령 위반, 명백한 시공 불가, 통상 성능을 낼 수 없는 구조가 여기 포함된다.


공공공사는 이 문턱을 아예 계약 문언으로 못 박았다. 기획재정부 계약예규 「공사계약일반조건」 제19조의2는 계약상대자가 공사 이행 중 설계서의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누락·오류 및 설계서 간 상호모순이 있는 사실을 발견하면 해당 부분의 이행 전에 계약담당공무원과 공사감독관에게 동시에 통지하도록 한다. 통지하면 설계변경으로 처리되고 계약금액이 조정된다. 통지하지 않고 그대로 시공하면 그 결과는 계약상대자의 것이 된다. 이행 전 통지라는 시점 요건이 핵심이다. 준공 후에 도면이 잘못됐었다고 말하는 것은 통지가 아니라 변명이다.



■ 표3. 고지의무의 문턱 — 법리의 스펙트럼

표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공사가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 늘어난 부분은 전부 행위와 기록이다. 검토했는가, 의견을 냈는가, 언제 냈는가, 누구에게 냈는가. 실제 감정에서 시공사가 도면의 문제를 알았다는 정황은 대개 현장에 널려 있다. 공무팀의 질의서 초안, 협력업체 반장의 문자, 회의록 한 줄. 문제는 그 인식이 발주자에게 공식적으로 전달됐는가다. 전달된 기록이 없으면 인식은 시공사 내부에 갇히고, 갇힌 인식은 제669조 단서의 요건을 채운다. 알았으나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공사가 자주 빠지는 함정이 하나 있다. 고지를 했는데 발주자가 그대로 진행하라고 했다는 항변이다. 이 항변은 성립한다. 다만 고지의 내용이 구체적이었고 발주자의 지시가 문서로 남아 있을 때만 그렇다. 회의에서 말씀드렸다는 것과, 어떤 부위에 어떤 성능 저하가 우려된다고 공문으로 보냈다는 것은 법정에서 다른 무게를 가진다. 전자는 진술이고 후자는 증거다.


시공상세도의 승인도 같은 논리로 읽힌다. 시공사가 작성한 시공상세도를 설계자나 감리자가 승인했다면, 그 상세는 승인 시점부터 도급인의 지시에 준하는 지위를 얻는다. 승인된 상세대로 시공해서 생긴 하자는 설계 기인 쪽으로 기운다. 반대로 승인 없이 시공한 상세는 시공사의 판단이고, 그 결과는 시공사가 진다. 승인 서류 한 장이 귀속을 바꾼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상세도를 보냈으나 회신이 없어 그냥 진행했다는 진술이 흔하다. 보낸 기록은 있으나 받은 기록이 없고, 받은 기록은 있으나 승인 기록이 없다. 그 공백 하나하나가 감정서의 혼재 판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감리자가 있다. 대법원은 2017년 감리자가 설계도면대로 적합하게 시공되는지 확인하고 미시공·변경시공을 발견하면 통지하고 시정을 요구할 채무를 진다고 하면서, 그 채무 위반 여부는 당시 일반적인 감리자의 기술수준과 경험, 하자의 위치와 내용, 공사 규모에 비추어 발견을 기대할 수 있었는지로 판단한다고 했다. 시공사의 고지의무와 감리자의 확인의무는 같은 하자를 두고 겹친다. 시공사가 도면의 문제를 알았다면 감리자도 알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 겹침이 분쟁을 3자 구도로 만든다.



시공사를 지키는 것은 도면이 아니라, 도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 날짜다.



4. 성능 기대치는 계약의 내용인가


앞의 세 장은 하자가 있고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다뤘다. 이 장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거주자가 기대한 그 성능이 애초에 계약의 내용이었는가.


시공사와 분양자가 가장 자주 내세우는 방어선이 여기다. 우리는 법이 정한 기준을 지켰다. 그 이상은 계약한 적이 없다. 입주민이 더 조용한 집, 더 따뜻한 집을 원했다면 그것은 희망이지 약정이 아니다. 이 방어선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답은 기대가 계약에 편입되는 경로가 여러 갈래라는 데 있다. 명시적 약정만이 계약이 아니다. 대법원은 하자의 두 번째 갈래로 거래관념상 통상 갖추어야 할 품질을 들었고, 이는 계약서에 한 줄도 없어도 계약의 내용이 된다. 여기에 분양 광고, 모델하우스, 카탈로그의 성능 표기가 더해진다. 분양계약에서 광고 내용이 계약에 편입되는지에 대해 대법원은 구체적 거래조건에 관한 것이면 계약 내용이 될 수 있다고 보아 왔다. 층간소음 저감 특화 설계, 결로 방지 시스템 같은 문구가 광고에 있었다면 그것은 성능의 약속이 된다.



■ 표4. 성능 기대가 계약의 내용이 되는 다섯 가지 경로

표의 마지막 행이 최근 가장 크게 움직인 곳이다. 2022년 8월 4일 이후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한 공동주택은 준공 후 실제 세대에서 바닥충격음을 측정해야 한다. 경량·중량 모두 49dB이 기준이고, 미달하면 사용검사권자가 보완 시공이나 손해배상을 권고한다. 시행 후 2025년까지 성능검사를 받은 19개 단지 중 6개, 32%가 미달했다. 강제력은 아직 권고에 그친다. 그러나 이 제도가 바꾼 것은 강제력이 아니라 기준선의 위치다. 시험동의 등급이 아니라 실제 세대의 데시벨이 기준이 됐다. 성능기대가 법령의 언어로 편입된 것이다.


중랑구 사건에서 1심 법원이 쓴 표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차단성능이 정해진 바닥충격음 차단구조의 성능은 사회 통념상 실제 시공된 공동주택에서도 유지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시험실 성능은 시험실에 두고 오는 것이 아니라 집까지 따라와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이것을 기대의 계약화라고 부른다. 거주자의 기대가 판례와 제도를 통해 조금씩 계약의 내용으로 굳어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기대가 계약에서 빠지는 일은 없다.


분양 광고의 편입은 한 번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분양 광고가 청약의 유인에 불과한지, 계약의 내용이 되는지를 그 광고가 구체적 거래조건에 관한 것인지로 갈라 왔다. 아파트 단지의 조망이나 주변 개발 계획처럼 분양자가 통제할 수 없는 사항은 유인에 그친다. 그러나 바닥 구조, 단열 사양, 창호 등급처럼 분양자가 시공으로 실현할 수 있는 사항은 계약의 내용이 된다. 여기서 성능 표기의 방식이 중요해진다. 층간소음 저감 특화라는 문구는 추상적이어서 편입되기 어렵지만, 중량충격음 1등급 차단구조 적용이라는 문구는 구체적이어서 편입된다. 광고를 쓴 사람은 후자가 더 잘 팔린다는 것을 알고, 감정인은 후자가 더 무겁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시공사는 무엇을 방어할 수 있는가. 통상의 범위다. 통상 갖추어야 할 품질은 무한하지 않다. 법정 기준을 만족하고, 광고에 특별한 약속이 없었고, 동시대 같은 등급의 주택이 통상 보이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하자가 아니다. 결로를 예로 들면, 결로방지 설계기준의 TDR 값을 만족하는 부위에서 실내 온도 25도, 상대습도 50%의 표준 조건을 크게 벗어난 생활 습관으로 곰팡이가 생겼다면, 그것은 통상의 품질 문제가 아니라 사용 조건의 문제다. 감정인은 이 경계를 측정으로 그린다. 표면온도, 실내 온습도, 환기 조건을 실측해 설계 조건과 대조한다. 대조 결과가 설계 조건 안이면 시공사가 방어할 수 있고, 밖이면 방어선이 무너진다.



기대는 점점 계약이 된다. 시공사가 지킬 수 있는 것은 통상의 경계선뿐이다.



5. 설계·시공 책임 분쟁의 감정 방법


이제 감정인의 자리로 돌아오자. 앞의 네 장은 감정인이 순서대로 던져야 할 네 개의 질문이었다.


첫째, 하자가 있는가. 성능으로 판단한다. 둘째, 원인이 설계인가 시공인가 상세 부재인가 사용인가. 도면과 현장을 대조하고, 도면이 침묵한 자리를 찾는다. 셋째, 시공사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가. 기록으로 판단한다. 넷째, 그 성능이 계약의 내용인가. 편입 경로를 확인한다. 이 네 질문의 순서를 바꾸면 감정이 흔들린다. 원인부터 찾기 시작하면 하자의 존재 자체를 놓치고, 계약 내용부터 따지면 통상 품질을 놓친다.



■ 표5. 설계·시공 책임 분쟁의 감정 5단계

이 다섯 단계 가운데 감정 결과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4단계다. 1단계부터 3단계까지는 기술이 답한다. 측정하고, 뜯어보고, 대조하면 된다. 4단계는 기록이 답한다. 그리고 기록은 감정인이 만들 수 없다. 당사자가 그 시점에 남겼거나 남기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감정서에 설계 기인과 시공 기인이 혼재하여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쓰는 순간, 그 문장은 4단계 자료가 없었다는 고백이다.


책임 비율을 내는 방식도 여기서 갈린다. 4단계 자료가 있으면 감정인은 하자 부위별로 설계 기인과 시공 기인을 나누고, 각 부위의 보수비를 합산해 비율을 산출한다. 부위별 배분이다. 자료가 없으면 부위별 배분이 불가능하고, 감정인은 전체 보수비에 대해 통상의 관행이나 유사 사례를 근거로 포괄 비율을 제시하게 된다. 포괄 비율은 언제나 다툼의 대상이 된다. 설계자는 너무 높다 하고 시공사는 너무 낮다 한다. 재판부는 감정인에게 근거를 묻고, 감정인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답한다. 그 답이 감정보완신청으로 이어지고, 재판은 반년이 더 간다.

그래서 이 분쟁의 예방은 기술이 아니라 기록에서 시작된다. 시공사가 도면의 문제를 발견한 순간 그것을 누구에게 언제 어떤 내용으로 알렸는가. 설계자가 그 질의에 무엇이라고 회신했는가. 감리자가 그 회신을 승인했는가. 이 세 개의 시각이 남아 있으면 감정은 하루면 끝난다. 없으면 감정은 추정이 되고, 추정은 양쪽 대리인 모두의 공격 대상이 된다.


여기서 현장의 기록 방식이 결정적이다. 종이 질의서는 누가 언제 받았는지 남기지 않는다. 회의록은 회의가 끝난 뒤 정리되고, 정리하는 사람의 기억에 의존한다. 사진은 찍히지만 어느 부위인지 언제인지 붙어 있지 않다. 이런 기록은 3년 뒤 법정에서 힘이 없다. 반면 모바일 검측 앱에서 발행된 질의 티켓 하나는 발행 시각, 발행자, 대상 부위의 도면 좌표, 첨부 사진, 수신자의 열람 시각, 회신 내용을 한 덩어리로 들고 다닌다. 도면의 오류를 발견했다는 사실과 고지했다는 사실이 같은 화면에 붙어 있다. 제669조 단서가 요구하는 알았는가와 고지했는가가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 표6. 고지·승인 기록의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의 화려함이 요점이 아니다. 요점은 고지의 문턱이 낮아진 시대에 고지의 증거를 남기는 비용이 함께 낮아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문 한 통을 보내려면 결재선을 타고 하루가 걸렸고, 그래서 사소해 보이는 도면 문제는 전화로 끝났다. 지금은 현장에서 사진 한 장 찍고 티켓을 발행하는 데 1분이 걸린다. 그 1분이 3년 뒤 수억 원의 배상 책임을 가른다.


그러면 무엇부터 할 것인가. 순서를 정하자.



■ 표7. 설계·시공 책임 경계를 지키는 로드맵

1단계와 2단계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계약서 한 조항과 회의 한 번이다. 그런데도 감정 현장에서 착공 전 설계도서 검토 의견서를 본 기억이 드물다. 검토는 했으나 문서로 내지 않았거나, 아예 하지 않았거나. 어느 쪽이든 3년 뒤에는 같은 결과가 된다. 고지하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자. 도면을 지켰다는 것은 면책 사유가 아니라 출발선이다. 도면은 발주자의 지시이고, 지시를 따른 자는 원칙적으로 그 지시의 위험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가에게 그 원칙은 조건부다. 지시가 잘못됐음을 알 수 있었다면 말해야 하고, 말했다면 기록해야 하고, 기록은 시점을 가져야 한다. 성능기대는 계약 밖에서 계약 안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다. 사후확인제가 그랬고, 통상 품질의 범위가 그렇게 넓어지고 있다. 설계기준과 성능기대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그 간극을 누가 메울 것인가만 매번 새로 정해질 뿐이다.



도면대로 지었다고 말하기 전에, 도면이 틀렸다고 말한 날짜가 있는지 확인하라.

참고자료


1. 민법 제667조(수급인의 담보책임), 제669조(하자가 도급인의 제공한 재료 또는 지시에 기인한 경우의 면책)


2. 대법원 1996. 5. 14. 선고 95다24975 판결(설계도면대로 시공한 수급인의 담보책임)


3.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08다16851 판결(건축물 하자의 개념)


4.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2다89320 판결(설계·감리·시공 손해배상채무의 부진정연대)


5. 대법원 2017. 12. 28. 선고 2014다229023 판결(감리자의 확인·통지 채무와 판단 기준)


6. 서울행정법원 2026. 4. 16. 선고 2025구합53347 판결(하자판정 처분 취소 청구, 법률신문 2026. 6. 15. 보도)


7. 기획재정부 계약예규 「공사계약일반조건」 제19조의2(설계서의 불분명·누락·오류 및 설계서 간 상호모순 등에 의한 설계변경)


8. 국토교통부 고시 「건축물의 설계도서 작성기준」(설계도서 해석의 우선순위), 「공동주택 결로 방지를 위한 설계기준」


9. 주택법 제41조의2 및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차단구조인정 및 관리기준」(바닥충격음 성능검사, 2022. 8. 4. 시행)


10. 감사원, 「아파트 층간소음 저감제도 운영실태」 감사보고서(2019. 4.);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국토교통부 용역 최종보고서(2022. 2.)


11. 주거환경신문, 「층간소음,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의 핵심 내용 분석」(2023. 11. 10.)


12. 경실련, 「층간소음 사후확인제 이후 성능검사 실시현황 분석」 기자회견 자료(2025. 9.)


13.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 하자 판정 현황(2021~2026. 2. 하자심사 10,911건 중 68.3% 하자 판정)


14. United States v. Spearin, 248 U.S. 13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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