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소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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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소실점
건축사와 기술사는 건물에서 만난다.
투시도를 그려 본 사람은 안다. 소실점은 둘이다. 수평선 왼쪽 끝에 하나, 오른쪽 끝에 하나. 두 점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
그런데 양쪽에서 뻗은 선이 가운데서 엇갈린다. 그 교차점에 건물의 모서리가 선다. 소실점끼리는 만나지 않는다. 선이 만난다. 선이 만나는 곳에 건물이 있다.
건축을 배운 사람은 첫 학기에 이 그림을 그린다. 건축사도, 기술사도 같은 그림에서 시작했다. 어느 쪽 소실점을 오래 바라보았느냐가 다를 뿐이다.
2026년 8월 27일. 헌법재판소가 2022헌마1211 사건을 정리했다. 청구인은 건축시공기술사. 건축물 공사감리와 해체감리를 건축사 중심으로 묶은 조항, 「건축법 시행령」 제19조 제1항과 「건축물관리법」 제31조 제1항이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결론은 기각. 조항은 합헌이다.
현장에서는 두 말이 돌았다. 건축사와 기술사는 결국 평행선이다. 그리고 기술사는 이제 끝났다.
이 글은 둘 다 틀렸다고 본다. 두 직업은 서로 다른 소실점이다. 소실점이 다르다는 것은 싸울 이유가 아니라 함께 건물을 그릴 이유다.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두 소실점에서 나온 선은 어디서 만나야 하는가.
1. 도면의 소실점, 공정의 소실점
건축사의 소실점은 도면이다. 공간을 구상하고, 법규에 맞추고, 도면에 날인한다. 법은 설계와 건축물 공사감리를 건축사에게 묶었다. 이 선은 허가에서 출발한다.
기술사의 소실점은 공정이다. 그 도면이 현장에서 어떤 순서로, 어떤 재료로, 어떤 위험을 거쳐 올라가는지를 본다. 시공, 품질, 안전, 판정. 이 선은 현장에서 출발한다.
두 점은 수평선 양 끝에 있다. 도면만 보는 사람은 공정을 놓치고, 공정만 보는 사람은 도면의 의도를 놓친다. 어느 한쪽 소실점만으로는 건물을 그릴 수 없다. 1소실점 투시도는 복도는 그려도 건물의 모서리는 못 그린다.


이 표에서 기술사의 불안이 보인다. 건축사의 선은 법이 곧게 그어 준다. 기술사의 선은 개별 법령이 점선으로 이어 준다. 제도가 바뀌면 점선이 끊긴다. 2020년 건설기술인 등급이 자격·학력·경력을 합산하는 역량지수로 바뀌면서, 기술사 자격증은 최고 등급의 동의어에서 여러 점수 가운데 하나가 됐다. 여기에 AI가 일지와 사진과 물량을 가져간다는 말까지 겹쳤다.
현장대리인도 비슷하다. 기술사가 있으면 좋지만, 기술사여야만 하는 자리는 많지 않다. 발주처 평가에서 가점이 붙는 정도다. 가점은 경쟁이 치열할 때만 돈이 된다. 기술사 무용론은 이 틈에서 자란다. 경력만 쌓으면 특급인데 굳이 시험을 볼 이유가 있느냐, 자격증은 결국 이름을 빌려주는 용도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나 무용론은 한 가지를 놓친다. 제도가 준 점선은 흔들려도, 현장이 요구하는 판단은 흔들리지 않았다. 골조를 멈출지 말지, 이 방수층을 합격시킬지, 이 균열이 하자인지. 이 질문은 등급 제도가 바뀌어도, AI가 들어와도 여전히 사람에게 온다. 기술사의 선이 점선인 것은 법의 문제이고, 그 선이 가리키는 방향은 현장의 문제다.
기술사의 일을 조각으로 펼치면 지도가 나온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독점은 약해지고 판정의 비중은 커진다. 그리고 AI가 깎는 부분은 판정이 아니라 기록 쪽이다. 이 지도가 이 글 전체의 요약이다.
그래서 묻는 말을 바꿔야 한다. 기술사가 남느냐가 아니다. 기술사의 선이 어디서 건축사의 선과 만나, 어떤 건물을 그리느냐다.
평행선이라는 말은 편하다. 서로 상관없다고 선언하면 협업의 수고도, 경쟁의 긴장도 사라진다. 그러나 투시도에서 평행선은 가장 먼 곳에서 한 점으로 모인다. 건축사와 기술사의 선도 결국 같은 건물을 향한다. 문제는 그 만남을 가장 먼 곳, 즉 사고와 소송의 자리에서 할 것인지, 가장 가까운 곳, 즉 설계와 현장의 자리에서 할 것인지다.
소실점이 다르다고 평행선은 아니다.
2. 헌재가 확인한 선: 수주의 문

먼저 정확히 읽는다. 이번 결정은 합헌이다. 조건도 없고, 개선 입법 시한도 없다. 현행 제도가 선을 넘지 않았다고 확인한 결정이다.
헌재는 이 제한을 직업선택이 아니라 직업수행의 제한으로 봤다. 기술사가 되는 길을 막은 것이 아니라, 기술사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를 건축사에게 맡긴 것이라는 판단이다. 독일 약국 판결 이래의 단계이론에 따르면 수행 제한은 입법자의 재량이 가장 넓은 영역이다. 청구인은 가장 오르기 어려운 비탈에 섰다.

급소는 세 곳이다. 종합 전문성, 양성 경로, 책임 규율. 헌재는 기술사가 시공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났을 때 무엇으로 책임을 묻느냐를 물었다. 2021년 광주 학동 철거 붕괴 이후 해체감리가 강화된 흐름도 같다. 입법자는 전문성보다 책임의 연결을 먼저 챙겼다.
건축사 쪽을 보면 차이가 구체적이다. 건축사는 대학 과정을 마친 뒤 실무수련을 거쳐야 시험을 본다. 자격을 얻은 뒤에는 협회를 통한 교육과 업무 관리 체계 안에 들어가고, 중대한 과실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면 자격 자체가 걸린다. 기술사는 시험의 수준이 높다. 그러나 시험 이후의 구조, 즉 업무별 수련·보수교육·징계·배상의 연결이 그만큼 촘촘하지 않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일본은 이 차이를 제도로 보여 준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972년 소매시장 판결에서 경제정책형 규제를 느슨하게, 1975년 약사법 거리제한 판결에서 위험 방지형 규제를 엄격하게 봤다. 그 위에서 일본 건축사는 업무독점에 가깝고, 기술사는 명칭독점이다. 기술사에게 업무를 독점시키지 않는 대신 신용 유지, 비밀 유지, 공익 확보의 책무를 지웠다. 한국 기술사는 그 사이, 넓은 직무와 조각난 권한 위에 서 있다.
책임 법령은 적어도 네 가지를 담아야 한다. 감리 업무에 한정한 실무수련 과정. 중대 과실 시 자격 정지·취소의 명확한 요건. 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 판정 기록의 보존과 사후 점검 체계. 이 넷이 법에 들어가면 다음 심판에서 법익 균형의 저울은 다르게 기울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결정을 과장하게 된다. 헌재가 확인한 것은 건축법상 공사감리를 누가 계약하느냐, 즉 수주의 문이다. 감리 현장에서 누가 일하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합헌은 종착역이 아니라 설명서다. 무엇이 부족한지 결정문이 적어 줬다. 다시 문을 두드리려면 여론전보다 책임 법령이 먼저다. 그리고 그 설명서를 끝까지 읽으면, 기술사의 선이 막힌 곳보다 열린 곳이 더 많다는 사실이 보인다.
헌재가 닫은 것은 수주의 문이다. 현장의 문이 아니다.
3. 수주는 못 해도, 현장의 척추는 기술사다
감리는 하나가 아니다. 법마다 감리가 있고, 법마다 감리자가 다르다. 이것을 나란히 놓으면 이번 결정의 크기가 정확히 보인다.

표의 아래쪽을 보라. 대단지 아파트와 공공 대형 공사의 감리는 건축사사무소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가 수주한다. 그리고 그 감리단의 총괄감리원, 공종별 책임자, 건설사업관리기술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특급 건설기술인이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기술사다.
현장을 떠올려 보자. 1,000세대 단지의 감리단 사무실. 골조 타설 전 검측, 방수층 입회, 흙막이 계측 확인, 설계변경 검토, 품질시험 입회. 매일 아침 공정 회의의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대개 시공과 품질을 수십 년 본 특급기술인이다. 서류상 감리자는 법인이지만, 현장에서 합격과 불합격을 부르는 목소리는 기술사의 목소리다.
그러니 정확한 문장은 이렇다. 기술사는 독립 업종으로서 건축물 감리를 수주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형 감리 현장의 척추는 기술사다. 수주의 문과 현장의 문은 다르다.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의 감리를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에게만 맡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단지 현장은 공종이 많고, 공정이 겹치고, 위험이 크다. 건축 한 분야의 눈으로는 부족하다. 골조, 토목, 설비, 전기, 안전, 품질을 각 분야의 전문 인력이 나눠 보는 조직이 필요하다. 입법자는 대형 현장에서 이미 다분야 협업을 감리의 기본값으로 삼았다. 그 조직의 중심에 특급기술인이 있다.
이 구조는 약점이자 강점이다. 약점은 계약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술사의 판단이 현장을 움직여도, 그 값은 법인의 매출과 월급으로만 남는다. 강점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주 자격은 제도가 바꿀 수 있지만, 현장에서 공정을 멈출 수 있는 판단력은 법 조항으로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상생의 첫 단서다. 대형 감리 현장에서는 이미 건축사와 기술사가 한 감리단 안에서 함께 일한다. 건축 분야와 구조, 시공, 설비, 안전 분야가 역할을 나눠 서명한다. 소실점의 선은 이미 현장에서 만나고 있다. 문제는 그 교차점이 제도의 언어로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건축법 감리의 중소 현장은 사정이 다르다. 건축사 감리자 한 사람이 설계 의도부터 골조, 방수, 마감까지 본다. 비상주 감리가 많고, 핵심 공정 입회가 빠지기 쉽다. 하자소송의 상당수가 이 규모에서 나온다는 것은 감정 현장에서 자주 확인된다. 수주의 문은 건축사에게 있지만, 공정 판정의 빈틈은 여기서 가장 크다. 두 번째 교차점이 여기에 있다.
수주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도 아니다. 기술사가 인력과 자본 요건을 갖춰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로 등록하면, 공동주택과 공공 건설사업관리의 수주 주체가 될 수 있다. 헌재가 확인한 것은 개인 기술사사무소가 건축법상 감리자가 되는 길이다. 조직을 갖춘 기술사에게는 이미 더 큰 감리의 문이 열려 있다.
이 빈틈을 기술사가 메우면 건축사 감리자도 이득이다. 핵심 공정 판정이 기록으로 남으면, 나중에 하자소송이 걸렸을 때 감리자의 책임을 방어할 근거가 된다. 감리자는 설계 의도와 법규 적합을 붙잡고, 공종 판정은 전문가의 서명으로 보강한다. 책임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근거가 두꺼워진다.
계약서의 이름은 법인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기술사다.

4. 감리는 닫혔다. 감정은 열렸다

감리와 감정은 닮았다. 둘 다 현장을 보고, 결과에 이름을 건다. 차이는 하나다. 감리는 공사 중 사전 통제이고, 감정은 분쟁 후 사후 판정이다.
제도는 사전 통제의 수주를 건축사에게 묶었다. 법원은 사후 판정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공사비 등의 감정인 명단에 건축사, 건축구조기술사, 건축시공기술사가 같은 칸에 들어간다. 감정인은 선서하고, 허위 감정은 형법상 허위감정죄로 처벌된다. 법정에서 기술사의 서명은 건축사의 서명과 같은 무게를 진다.
과거에는 건축 감정은 건축사의 일이라는 관행이 강했다. 판을 바꾼 것은 공동주택 하자소송이다. 소송이 늘고, 한 단지에서 수백 개 항목이 쟁점이 되고, 쟁점이 쪼개졌다. 미시공, 변경시공, 공종별 시공 하자.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11년 펴내고 2016년 개정한 『건설감정실무』는 계약서, 준공도면, 시방서, 법령, 통상의 품질을 판단 기준으로 정리했다.
쟁점이 쪼개지면 질문이 바뀐다. 도면이 무엇을 요구했는가에서, 그 공정이 현장에서 어떻게 올라갔는가로. 방수층은 어느 순서에서 빠졌는가. 균열은 타설 이음과 양생 중 무엇 때문인가. 지금 뜯어 고치면 공법은 무엇이고 얼마인가.
장면 하나. 변호사가 감정신청서를 쓴다. 쟁점은 지하주차장 상부 방수층 누락, 욕실 방수턱 높이 부족, 외벽 균열. 도면에는 모두 적혀 있다. 문제는 현장이다. 변호사는 이 질문에 답할 사람을 찾는다. 건설사 법무팀도 명단을 넘기며 같은 기준으로 고르고, 입주자대표회의도 전문가를 찾는다. 법원은 명단 안에서 쟁점에 맞는 사람을 지정한다. 고르는 쪽이 여럿이고, 고르는 기준이 공정으로 옮겨 갔다.
시공을 아는 눈은 여기서 드러난다. 방수층이 누락됐다면 어느 공정 순서에서 빠질 수 있었는지, 보호층을 뜯지 않고 확인할 방법은 무엇인지, 재시공할 때 인접 공종은 어디까지 건드려야 하는지. 콘크리트 균열이라면 타설 이음 위치와 양생 기간과 거푸집 해체 시점이 단서다. 창호 누수라면 도면에 없는 코킹 순서와 물끊기 처리가 핵심이다. 도면에 적힌 결과보다 적히지 않은 과정이 결론을 좌우한다.
보수비 산정도 정교해졌다. 보수 공법을 정하고, 공종별 물량을 뽑고, 표준품셈과 시장 단가로 금액을 쌓는다. 공법 하나를 잘못 고르면 금액이 몇 배로 흔들린다. 감정서의 마지막 숫자가 판결의 손해액이 되는 이상, 현장 공정과 단가에 가까운 지식의 값은 계속 오른다.


대형 하자소송의 쟁점은 대부분 아래쪽 세 줄에 몰린다. 법조 실무에서는 건설사 측이 보수비 산정이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시공기술사를, 원고 측이 하자 인정 범위가 넓다는 인식으로 건축사를 선호하는 경향도 관찰된다. 승패의 스코어가 아니라 쟁점의 분포다. 다만 지난 십여 년, 시공 과정을 읽어야 하는 쟁점의 의뢰가 기술사 쪽으로 기운 것은 분명하다.
감정인의 신뢰는 한 번에 생기지 않는다. 감정서가 판결에 인용되고, 보완감정에서 흔들리지 않고, 법정 증언에서 설명이 통할 때 쌓인다. 그 기록이 다음 사건의 지정으로, 변호사들 사이의 평판으로 이어진다. 지난 십여 년 시공기술사들이 쌓은 것은 제도가 준 문이 아니라 스스로 쌓은 문이다.

두 열은 거울처럼 반대로 읽힌다. 감리의 문은 입법과 결정으로 정해지고, 감정의 문은 사건마다 새로 열린다. 감리에서 기술사는 한 번의 결정으로 수주의 문을 확인받지 못했다. 감정에서 기술사는 수천 번의 선택으로 자리를 넓혔다. 제도의 한 판보다 시장의 수천 판이 더 오래 간다.
같은 십 년. 한쪽은 판결, 한쪽은 의뢰.
감리는 허가의 언어다. 감정은 현장의 언어다.
5. 사라지는 것은 일지다. 남는 것은 판정이다


왼쪽은 기록이다. 오른쪽은 결정이다. 드론이 외벽 균열 1,200개를 하루 만에 찾아도, 법정에 내는 것은 사진 1,200장이 아니라 판단의 목록이다. 0.3mm 미만을 허용 범위로 볼 것인가, 창호 모서리 사선 균열은 설계 탓인가 시공 탓인가, 표면 처리로 되는가 주입이 필요한가.
감리 현장도 같은 흐름이다. 원격 영상 입회, 센서 기반 콘크리트 강도 추정, 공정 데이터 자동 수집이 들어온다. 상주 인원은 줄고, 데이터를 읽고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말할 사람의 권한은 커진다. 감리 수주가 건축사에게 있어도, 그 판단을 뒷받침할 시공 데이터의 해석은 시공 전문가를 부른다.
AI는 초안을 쓴다. 그러나 서명하지 못하고, 선서하지 못하고, 반대신문에 서지 못한다. 그림자를 균열로 읽고 도장 얼룩을 누수로 칠하는 오탐을 걸러 내는 일 자체가 새 전문 업무가 된다. 감리 현장도 같다. 일지가 자동으로 쓰이면 상주의 명분은 약해지고, 입회해서 공사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의 값은 올라간다.


가운데 열은 빨라지고 싸진다. 오른쪽 열은 그대로이거나 더 무거워진다. 그래서 AI 시대의 판정서에는 조건이 붙는다. 근거를 따라갈 수 있어야 하고, 기준을 밝혀야 하고, 서명한 사람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도구가 좋아질수록 판정서는 더 투명해져야 한다.
AI가 지우는 것은 두 소실점 사이의 잡선이다. 남는 것은 두 선이 만나는 교차점, 곧 판단이다. 탐지가 싸질수록 판정은 비싸진다.
결국 경쟁 상대는 AI가 아니라 AI를 쓰는 다른 기술사다. 같은 사건을 두고 한 사람은 2주 동안 사진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은 이틀 만에 정리를 끝낸 뒤 열이틀을 원인 분석과 보수 공법 검토에 쓴다. 누구의 감정서가 법정에서 버티는지는 물을 필요가 없다.
기계가 적는다. 사람이 본다.
6. 소실점은 어디서 모여야 하는가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건축사와 기술사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가. 소실점끼리는 그렇다. 그러나 선은 만난다. 문제는 어디서 만나느냐다. 교차점을 잘못 잡으면 선은 서로를 자르는 싸움이 되고, 제대로 잡으면 건물의 모서리가 된다.
교차점을 찾는 기준은 단순하다. 한쪽 소실점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 있는 곳. 도면의 의도와 현장의 공정이 동시에 필요한 곳. 그리고 판단이 틀렸을 때 사람과 돈이 크게 다치는 곳. 이 세 조건이 겹치는 자리가 두 직업이 만나야 할 자리다.
교차점은 공사의 시간 순서를 따라 여섯 곳에 있다.


① 설계에서 만난다. 가장 이른 교차점이 가장 싸다. 설계 단계에서 공종 간 간섭, 시공 순서의 모순, 누락 공종을 걸러 내면 현장의 설계변경과 하자 분쟁이 줄어든다. 건축사는 도면의 품질을 높이고, 기술사는 설계 단계의 판정 상품을 얻는다. 둘 다 이긴다.
② 감리 현장에서 만난다. 대형 현장에서는 이미 만나고 있다. 남은 곳은 건축법 감리의 중소 현장이다. 건축사 감리자가 골조·방수·흙막이 같은 핵심 공정에 기술사의 공종 검측을 붙이는 구조. 수주의 주인은 건축사, 공종 판정의 서명은 기술사. 헌재가 요구한 책임 규율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장의 품질을 올린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건축사 감리자가 공사감리를 계약하면서, 흙막이·골조 타설·지하 방수·외벽 창호 같은 고위험 공정 몇 가지를 지정해 기술사의 공종 검측을 붙인다. 기술사는 입회하고, 판정서에 서명하고, 그 기록은 감리보고서에 첨부된다. 발주자는 조금 더 내고, 하자 분쟁의 가능성을 크게 줄인다. 계약 구조는 단순하고, 법을 바꿀 필요도 없다.
③ 준공에서 만난다. 사용승인은 건축사의 선이다. 입주 후 하자는 기술사의 선이다. 그 사이에 준공 전 하자 점검을 끼우면, 소송으로 갈 사건이 보수 계획으로 끝난다. 법정에서 무엇이 하자가 되는지 본 사람이 하자를 가장 잘 막는다.

④ 분쟁에서 만난다. 감정은 이미 동등한 교차점이다. 설계 하자는 건축사가, 시공 하자와 보수비는 기술사가 맡는 쟁점 분담이 사건의 질을 올린다.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쟁점마다 맞는 눈을 붙이는 것이 법원의 이익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형 감정에서는 이미 이런 분담이 나타난다. 설계 하자 쟁점과 시공 하자 쟁점이 섞인 사건에서, 감정인이 다른 분야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감정서에 반영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이것을 예외가 아니라 원칙으로 만들면 감정서의 품질이 오르고, 보완감정과 재감정으로 늘어지는 소송 기간도 줄어든다.
⑤ 노후 건축물에서 만난다. 앞으로 가장 커질 교차점이다. 해체와 리모델링, 성능 개선은 신축의 역순이다. 도면이 없거나 틀린 건물이 많다. 설계 의도를 복원하는 눈과 시공 과정을 역추적하는 눈이 동시에 필요하다. 학동 이후 사회가 요구하는 것도 이 결합이다.
노후 건축물 교차점은 규모가 커지고 있다. 1980~90년대에 대량으로 지은 아파트와 상가가 한꺼번에 재건축·리모델링·해체의 시기를 맞는다. 남은 수명을 판단하고, 보강할지 헐지 정하고, 헌다면 어떤 순서로 헐지를 정해야 한다. 이 판단의 앞머리는 설계의 선이고, 뒷머리는 시공의 선이다. 한쪽만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⑥ 데이터에서 만난다. AI 시대의 교차점이다. 설계 데이터만으로 학습한 AI는 예쁜 도면을 그리고, 시공 데이터만으로 학습한 AI는 기록을 정리한다. 두 데이터가 만나야 이 도면이 현장에서 되는가를 판정하는 AI가 나온다. 이 AI를 누가 먼저 설계하느냐가 다음 십 년의 업역을 가른다.

교차점마다 만나는 방식도 정해 둘 필요가 있다. 한쪽이 다른 쪽의 하청이 되면 선은 다시 한 방향으로 쏠린다. 서명이 나란히 남아야 모서리가 선다.

교차점 하나를 구체적으로 보자. 법원 감정에서 지하주차장 상부 방수층 누락이 반복된다고 하자. 감정인은 왜 빠졌는지 안다. 방수층 시공과 보호 콘크리트 타설 사이에 검측이 비었고, 조경 공사가 서둘러 덮었기 때문이다. 이 지식이 설계 단계로 가면 시방서의 한 줄이 된다. 방수 완료 후 보호층 타설 전 입회 검측 필수. 감리 현장으로 가면 체크리스트의 한 줄이 된다. 한 교차점에서 배운 것이 다른 교차점의 품질을 올린다. 교차점은 따로 있지 않고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여섯 교차점의 공통점은 하나다. 건축사의 영역을 빼앗는 곳이 아니라, 건축사의 선만으로는 모서리가 그려지지 않는 곳이다. 상생은 양보가 아니라 도면의 기하학이다.
소실점은 만나지 않는다. 선이 만난다. 그 선이 만나는 곳이 현장이다.
7. 업역은 교차점에서 넓어진다
교차점을 알았으면, 기술사가 그 자리에 설 조건을 갖춰야 한다. 네 가지다.

첫째, 책임을 먼저 설계한다. 결정문이 요구한 것은 시험의 난이도가 아니라 사고 이후의 책임이었다. 업무별 실무수련, 중대 과실 시 자격 정지·취소의 명확한 요건, 배상책임보험, 판정 기록의 보존. 이것을 기술사회가 먼저 갖추고 입법을 요구하면 대화가 달라진다. 권한을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책임을 지겠다는 제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일은 개인 사무소의 몫이 아니다. 기술사회 같은 단체가 업무별 실무수련, 윤리·징계 규정의 실효화, 단체 배상책임보험을 먼저 갖춰야 한다. 건축사단체와 교차점별 협업 기준을 함께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두 단체가 같은 책상에서 책임의 경계를 그리면 입법자도 그 선을 따라간다.
둘째, 현장의 이름을 계약의 이름으로 바꾼다. 대형 감리 현장의 척추인 기술사가 법인 안에서만 이름을 남기면 교차점의 값은 법인이 가져간다. 공종 판정서에 기술사의 서명을 남기고, 그 판정을 독립 상품으로 계약하는 구조를 늘려야 한다.
셋째, 감정을 본업으로 올리고 앞으로 당긴다. 감정 실적은 판결과 기록으로 남는 신용 증명서다. 그 신뢰를 설계 단계 시공성 검토, 공사 중 품질 판정, 준공 전 하자 점검으로 옮긴다. 감정서 한 건이 사전 점검 두 건을 부른다.
앞으로 당긴다는 것은 고객을 바꾼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후 감정의 고객은 법원과 소송 당사자다. 사전 점검의 고객은 발주자, 시행사, 설계사무소, 그리고 소규모 건축주다. 이들은 기술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누수와 균열은 안다. 자격이 아니라 결과, 곧 소송 가지 않는 건물을 팔아야 한다.
넷째, 판정을 서식으로 만든다. 쟁점, 기준, 근거, 판단, 보수, 서명. 이 여섯 칸을 고정하면 감정서와 점검서와 검측서가 한 서식으로 묶이고, 경험이 복리로 쌓인다. AI가 초안을 채우고 사람은 판단과 서명에 집중한다.

값을 매기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판정을 시간으로 팔면 AI가 시간을 줄일수록 매출도 준다. 판정은 책임의 크기로 팔아야 한다. 몇 세대의 하자를 막는가, 몇억 원의 분쟁을 줄이는가, 누가 서명하는가. 단가의 기준이 투입 인일에서 판정의 범위와 책임으로 옮겨 갈 때 AI는 비용 절감 도구가 아니라 이익 확대 도구가 된다.



교차점 상품은 크지 않게 시작해도 된다. 설계사무소 한 곳과 시공성 검토 한 건, 건축사 감리 현장 한 곳과 방수 공정 검측 한 건. 한 번 만난 선은 다음 건물에서도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신뢰는 교차점의 개수만큼 쌓인다.
건축사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수주의 문을 지켰다고 모서리가 저절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설계사무소가 시공성 검토를 기술사에게 맡기고, 기술사무소가 법규 검토를 건축사에게 맡기는 구조가 두 직업을 모두 살린다. 이번 결정을 승패로 읽으면 둘 다 잃고, 분업의 설명서로 읽으면 둘 다 얻는다.
8. 먹어도 됩니까?


대형 현장의 특급기술인이라면 자리는 안전하다. 다만 이름이 법인 뒤에 숨는다. 판정서에 서명을 남기고 감정인 등재로 이름을 드러내야 은퇴 뒤에도 값이 남는다. 독립 사무소라면 감리 매출의 공백을 교차점 상품으로 1년 안에 메워야 한다. 감정은 간판이 되고, 매출의 바닥은 설계 단계 검토와 준공 전 점검이 받친다.
감정 수임은 들쭉날쭉하다. 대형 하자소송 하나가 몇 달의 일을 채우다가 다음 몇 달은 비기도 한다. 감정료는 법원의 심사를 거치고 예납과 지급도 절차를 따른다. 감정만으로 사무소를 돌리려 하면 불안하다. 감정은 간판이고, 교차점 상품이 매출의 바닥이다.
건축사와의 가격 경쟁은 같은 선 위에 설 때만 붙는다. 도면 검토, 법규 검토, 일반 하자 점검은 건축사도 한다. 공정 순서, 시공성, 보수 공법, 보수비로 들어가면 싸움의 성격이 바뀐다. 교차점에서 만나면 가격이 아니라 분업의 문제가 된다.
감리 수주만 보면, 아니요. 교차점에서 판정을 팔면, 예. 이름만 빌려주는 기술사는 AI 시대에 가장 먼저 값이 떨어지고, 서명할 수 있는 판단을 파는 기술사는 가장 늦게 떨어진다.
정리하면 기술사의 업무는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이동한다. 허가의 영역에서 판정의 영역으로, 기록의 영역에서 결정의 영역으로, 법인 뒤의 익명에서 서명이 남는 이름으로. 이동을 따라가는 기술사에게 이번 결정은 끝이 아니라 방향 표지판이다.
먹어도 됩니까. 수주만 보면 아니요. 교차점을 잡으면 예.
건축사와 기술사가 서로를 평행선이라 부르는 동안, 발주자와 입주자는 둘 사이의 빈틈에서 하자를 떠안는다. 두 선이 제자리에서 만나면 그 빈틈이 사라진다. 상생은 두 직업을 위한 말이기 전에 건물을 쓰는 사람을 위한 말이다.
이 글을 한 표로 접으면 이렇다.

헌재는 수주의 문을 확인했다.
현장은 이미 기술사의 목소리로 움직인다.
법원은 감정을 열어 두었다.
두 소실점은 만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건물을 세우는 쪽이 남는다.

근거 — 헌법재판소 2022헌마1211 결정(2026. 8. 27., 건축사신문 보도), 「건축법 시행령」 제19조 제1항, 「건축물관리법」 제31조 제1항, 「주택법」 제43조·같은 법 시행령 제47조(주택건설공사 감리자 지정), 「건설기술 진흥법」(건설사업관리), 「민사소송법」 제338조, 「형법」 제154조, 서울중앙지방법원 『건설감정실무』, 일본 최고재판소 1972년 소매시장 판결·1975년 약사법 거리제한 판결. 감정 의뢰 경향은 법조 실무 관찰에 따른 것이며 공식 통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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